(현장+)보존 넘어 산업·세계로…전북의 '한옥 실험'
전통가옥, 현대화로 '재탄생'
청년이 주도하는 한옥의 미래
2026-01-19 11:00:00 2026-01-19 14:32:16
[고창=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사포질에 미쳤어요?"
 
사포를 쥔 채 나뭇결을 몇 번이고 만져보고 문지르기를 반복하자, 옆에 있던 선배 기자가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한옥 건축에서 쓰이는 '결구'(못 없이 나무를 끼워 맞춰 고정하는 구조) 방식으로 목제 받침대를 만드는 수업이었습니다. 지난 16일 국내 유일의 한옥학과가 설치된 전북대학교 고창 캠퍼스를 찾았습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옥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옥 결구 방식으로 받침대를 만들고 있다. 해당 사진은 양다리 사이 '귀틀'을 결합하는 과정. (사진=뉴스토마토)
 
"국내 최고 교육"…한옥 메카 '고창'에 모인 청년들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에게 목공 체험은 별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한옥'과 '목공' 모두 일상과 거리가 먼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취재 일정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 때문에 참여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이 시작되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본 적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를 사포로 문지를 때마다 톱밥을 뒤집어썼지만, 부드러워지는 감촉이 좋았습니다.
 
받침대 다리와 상판을 연결한 후, 결합부에 못 역할을 대신하는 나뭇조각 '목쐐기'를 박아 넣었었습니다. 그제야 받침대 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어야 할 '귀틀'을 빼놓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귀틀은 기둥이 벌어지거나 비틀리지 않도록 하부 구조의 틀을 잡아주는 부재입니다. 한 번 박힌 목쐐기는 도저히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결과물과 비교하면 핵심 요소가 빠진 실패작이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정성스럽게 다듬을수록 결은 아름다워졌고, 은은한 나무 냄새 속에서 시간 감각을 잃은 채 작업했습니다. 인솔자에게서 50분가량이 지났다는 말을 듣고서야 멈췄습니다. 
 
이곳 전북대 고창 캠퍼스는 '한옥 건축 특성화 캠퍼스'로 지정돼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과 장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날도 실내 작업장에서는 한옥학과 학생들의 실습이 한창이었습니다. 만 30세 이상의 '만학도'만 입학할 수 있다는 설명에 당연히 중장년층이 대다수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현장에 있던 학생 대부분은 기자와 비슷한 또래였습니다. 한옥과 무관한 전공·직장 생활을 거친 진빈(34)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현재 한옥학과 3학년으로, 방학 기간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이번 실습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전북대 고창 캠퍼스에서 한옥학과 학생들이 실습 중이다. (사진=뉴스토마토)
 
한옥, 과거에서 '오늘의 주거'로…재정 지원은 '과제'
 
진빈씨는 한옥에서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습니다. 목표는 한옥을 그대로 짓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 구조를 현대 인테리어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는 "한옥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내장재의 경우에는 그대로 쓰기 어렵다"며 "현대에 맞게 융화해 지금의 생활에 맞는 형태로 발전시켜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제 한옥은 교육·실습에만 머물지 않고 '수출'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옥을 수출하거나 수주한 사례가 있는 국가는 알제리·베트남·필리핀·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 등 7개국에 이릅니다. 또 10여개국에서 20여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러시아의 한 고객은 한국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한옥 건축을 문의해왔습니다. 관건은 기후와 환경을 넘어, 현지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설계입니다. 한옥 수출은 단순한 건축 행위가 아닌 '문화적 교류'로서, 정부가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K-컬처'(한국 대중문화)의 핵심축인 셈입니다.  
 
러시아에 툴라에 수출할 한옥 조감도(왼쪽)와 모형. (사잔=전북대, 뉴스토마토)
 
이처럼 한옥이 해외에서는 수출산업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정책과 재정 기반이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된 상태입니다. 국토교통부는 한옥 공공건축을 확대하기 위해 어린이집·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에 동당 약 1억~2억원을 지원하고, 한옥을 현대 주거 환경에 적용하기 위해 시공 기술과 자재 관련 연구개발(R&D)을 추진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 집행되는 관련 예산은 '한옥 건축 전문인력 양성 사업'에 배정된 3억원가량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고창=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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