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미국이 이란을 기습 공격한 지 한 달이 다 돼갑니다. 미국의 일방적인 공세로 일단락 지어질 것 같았던 전쟁은 이란의 반격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을 바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향후 전황의 중요 변수입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트럼프의 입 혹은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집중되는 가운데, 지난주 세간의 이목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미국행에 모아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 나라를 콕 집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한 뒤 첫 번째 정상 간의 만남이었기 때문입니다. 중동 정세에 최대한 말을 아껴왔던 중국도 미일 정상회담을 주목했습니다.
<환구시보>는 지난 20일과 21일자 지면 1면으로 다카이치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내용을 다뤘습니다. 특히 20일자 '다카이치 총리가 논란 속에서 미국을 방문한다'는 제하의 기사에서는 미국의 파병 요구에 대한 일본의 대응에서 중국이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재군사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정을 얻지 못한다'는 부제에서 보듯, 중국은 일본 자위대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환구시보> 20일자 지면 1면 모습. (사진=환구시보 지면 이미지 캡처)
발단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취임 보름을 갓 넘긴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중국이 전함을 동원해 대만을 전면 해상 봉쇄하고 무력 행사를 수반하는 상황'을 가정하면서 "이를 해제하기 위해 미군이 전함을 투입하고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는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언급한 '존립 위기 사태'는 일본 안보법상 집단 자위권을 발동해 자위대가 무력 행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데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양안 갈등을 자국의 군사 개입의 직접적 사유로 명시한 겁니다.
중국은 이에 즉각 반발했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문제는 '내정간섭'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일본과의 관계가 급속 냉각됐는데요.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재개, 일본 관광 제한 등 직간접적인 '한일령' 조치도 뒤따랐습니다.
취임 이후 군사 대국화를 주장해왔던 다카이치 총리가 미국의 파병 요구를 지렛대 삼아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미일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노출한 것으로 볼 수 있죠. <환구시보>는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방미를 계기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완화하려 했으나, 미국의 파병 요구로 당초 의도한 바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만은 내정 문제…4개 정치문건 지켜라"
중국의 불편함은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도 읽혔습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9일의 브리핑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공공연히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대만 문제에 무력 개입하려는 의도는 중국에 위협이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튿날인 20일에도 그는 "대만은 중국 영토에서 떼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며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에 속하며,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미국의 파병 요구는 완곡히 거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 되레 중국을 자극한 것으로 보입니다.
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만이 세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며 "흔들림 없는 동맹을 약속해 주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중동 뿐 인도·태평양 안전 보장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는데요. 일본이 은연중에 '대만 유사시'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린젠 대변인은 "진정한 대화는 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대화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립을 하려 한다면 그 누구도 이러한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일본이 진심으로 중일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있다면 중일 간의 '4개 정치 문건'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거론됐던 '4개 정치 문건'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입니다. 4개 정치 문건은 중일 공동성명(1972), 중일 평화우호조약(1978), 중일 공동선언(1998), 전략적 호혜 관계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2008)을 가르킵니다.
해외 기업인 발길 속 일본은 없어
중국과 일본의 냉랭한 관계는 외교부의 날선 발언뿐 아니라 민간외교의 장에서도 포착됐습니다. 중국은 지난 22일부터 양일 간의 일정으로 베이징에서 '중국 발전 고위급 포럼(CDF)'를 개최했습니다. '15차 5개년 계획의 중국: 고품질 발전과 새로운 기회 공동 창출'을 주제로 열린 올해 행사에 100명에 가까운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였는데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 국내 기업인은 물론, 팀 쿡 애플 CEO도 2년 연속 참석하며 중국이 무시할 수 없는 비즈니스 파트너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 일본 기업인들은 종적을 감춰 눈길을 끌었는데요. 전체 79명의 해외 내빈 중 4명이 일본 재계 인사였던 지난해 행사와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중국 <신경보> 23일자 지면 1면 모습. (사진=신경보 지면 이미지 캡처)
한편 중국 언론들은 이번 고위급 포럼에 대해 "중국은 가장 뛰어난 국제 자본의 안전 도피처"라고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이들은 "세계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거물급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각국 경영진들이 중국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세계 경제 분열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의 고도 개방 정책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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