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선 '현수막 규제'를 놓고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혐오·비방성 현수막 규제를 강조하자 정부가 후속 조치를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혐오·비방으로 규정할 것이냐를 놓고 표현의 자유 논란도 불거져 지자체마다 규제 수위를 놓고 온도차를 보이는 겁니다. 적극 단속하는 곳이 있는 반면 정부 지침을 단순 이행하는 데 그치는 곳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규제 여부를 지자체 판단에 맡기기보다 법적으로 통일된 명확한 기준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분기 서울시의 정당 현수막 정비 실적은 각각 5783건, 3513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6.3%, 233.9% 급증한 수치입니다. 지난해 3분기에는 387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527건)보다 13.6% 늘었습니다. 3분기의 경우 △개수 위반 141건 △금지 장소 위반 112건 △규격 위반 8건 △설치 기간 위반 3045건 △표시 방법 위반 139건 △설치 방법 위반 285건 △기타 140건이었습니다. 관련 민원도 1869건이 접수됐습니다.
현수막 정비 실적이 늘어난 배경엔 12·3 계엄 후 격화된 정치·사회 갈등이 자리 잡고 있는 걸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 기준 정비 대상 현수막은 1971건으로, 전달인 11월 1124건보다 75.4% 치솟았습니다. 시민들의 불편 호소가 이어지자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와 업무보고 등을 통해 관련 대응을 주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1월18일부터 이른바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 적용 가이드라인'을 시행, 정당 현수막을 포함한 혐오·비방성 현수막 규제에 나섰습니다. 가이드라인엔 광고물 내용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왜곡·부정하거나 △사회적 통합을 저해해 피해 당사자 또는 다수인 민원이 제기된 경우 금지광고물로 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이후 지자체들은 자체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대응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는 지난 14일 '불법·혐오 현수막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혐오 표현이 담긴 현수막에 대해서는 즉시 수거·과태료 부과 방침을 밝혔습니다. 강원도 춘천시는 15일 관련 간담회를 열고 불법 현수막 근절을 위한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시민단체와의 공조 체계 구축에 나섰습니다. 경기도 안산시는 오는 2월부터 시민이 불법 유동 광고물을 신고·수거하면 보상을 지급하는 '수거 보상제'를 시행하고, 경기도 수원시는 지난해 12월 금지 광고물 기준을 조례·지침 차원에서 정리해 단속의 일관성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9일 제주시 연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제주시 어승생 한울누리공원 인근에 게시된 제주4·3 관련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성동구도 '금지광고물 실무 매뉴얼'을 자체 수립하고, 정당 현수막을 포함한 모든 금지 광고물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지 광고물로 판단된 현수막은 시정명령 후 24시간 내 정비를 원칙으로 합니다. 이를 위해 법률 전문가를 옥외광고심의위원으로 위촉해 심의를 거치는 구조를 갖췄습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행정 소송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설명입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현수막은 게시기간이 2주이기 때문에 속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매뉴얼을 수립하고, 기존 옥외광고물 심의위원회 내에 별도의 정당현수막 전담 소위원회를 꾸려 빠른 대응을 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행안부의 가이드라인 외에 별도로 추가 대응을 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행안부 가이드라인 외에 별도의 대응 매뉴얼이나 심의 체계를 추가로 마련하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앙정부에서 마련한 지침을 각 자치구에 전달해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 단계에서 추가적인 자체 기준이나 전담 심의기구 설치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는 현수막에 대한 통일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합니다. 현재 국회에는 정당 현수막 등과 관련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황입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현수막은 불특정다수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볼 수 있다는 특성이 있어 일정한 규제는 가능하다고 본다"며 "어떤 생각을 표출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데도 강제로 보여지는 방식인 현수막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전면 제한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현수막 말고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방법은 매우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누가 규제할 것인지(규제기구)에 대한 것을 적절히 설계해야 하는데, 이건 '법률'에 의해 정하는게 맞다"며 "법률상 근거가 없으니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무언가 마련하려고 하는건데, 법률에서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들. (사진=뉴스토마토 및 인터넷 캡처)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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